자연계는 대표적인 무정부적 생산사회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동식물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면서 태어나고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조화보다 더 완벽한 조화는 없다. 그 이유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그의 “국부론(國富論)”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대자연 스스로 가지는 자기조절의 힘이다.
그런 자연은 누구도 만들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연의 본원적 특성을 넘어서서 살 수 없다. 당장 음과 양(밤과 낮)이 적절하게 배합된 자연환경부터 그렇다. 누구도 아들과 딸을 사전에 선택하여 낳지 않는다. 그러나 남녀는 거짓말처럼 반반씩 태어난다. 자연은 스스로 그런 본원적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 공간이다. 스스로 그렇게 되어 있는 능력자를 우리는 신(神)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과 자연은 동일자(同一者)이다. 이는 국가체제에 따라 사회구성원을 인민이라 부르기도 하고 국민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인민이든 국민이든 사회구성원이기는 마찬가지인 이치와 동일하다.
자연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스스로 그렇게 되었으므로 자연이 창조한 자연 속의 모든 생명체는 무정부적 생산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를 우선시하는 사회는 무정부적 생산사회가 되고, 인간의 통제를 우선시하는 사회는 정부적 생산사회가 된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없으므로 보이는 인간의 손을 앞세우는 공산사회는 결코 자연의 섭리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앞세우는 민주사회를 이기지 못한다.
생산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하면 무정부적 생산은 사회의 구성원리에 정면으로 모순되는 생산방식이다. 교환사회에서의 생산은 원칙적으로 노동자들의 공동작품이다. 특히 직업이 분화된 분업사회에서는 혼자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이란 거의 없다. 이렇게 다수의 노동자 손을 통해 생산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생산은 사회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이 사유화되어 있으므로 다수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의 소유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주 한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즉 공동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한 사람이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다.
그 모순이란 자본가들은 자신의 부를 추구하기 위해 사적 생산을 더욱 늘리고자 하는 반면 노동자들은 그들의 생산물에 대한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주의의 출현을 부채질하는 물질적 기초가 된다. 공산주의자들이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외치는 핵심은 생산과 분배의 사회화가 진전되면 풍부한 생산물이 전체 노동자에게 골고루 돌아갈 것이므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자본가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길은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를 생산가치보다 적게 보상하는 것, 즉 불완전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그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킬 때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손해가 된다면 노동자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이익을 본다는 말은 노동자들의 생산 가치를 100% 다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5%든, 10%든, 노동자들이 생산한 이익의 일부를 자기가 착복하고 90%나 95%만 돌려준다는 말이다.
교환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노동자 스스로가 내는 세금은 물론이고 자본가들이 내는 세금도 따지고 보면 노동자들이 창출한 가치를 불완전하게 보상한 일부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자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동시에 자본가들의 세금을 내고, 사회적 부를 창출하기 위해 일하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에만 기여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산주의자들의 그런 주장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 그들이 저주하는 사적 생산이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예를 들면 땅이 넓은 러시아는 복지적 차원에서 누구나 신청만 하면 200~300평 가까운 주말농장을 분양해 준다. 물론 그런 주말농장은 자유민주주의의 사유재산과 동일한 것이므로 그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전적으로 자기 것이 된다.
문제는 공산주의적 협동농장과 사적 주말농장의 생산성이 1.5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 스스로 공동소유보다 개인소유가 보다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국가 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듯 공동(국가)재산은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모두가 주인인 재산이다. 즉, 주인 없는 재산이다. 주인 없는 재산은 모두가 먼저 뜯어먹기 바쁜 재산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손 영일 컬럼






